열린사회시민연합 은평시민회

공지사항

은평구의회, '은평구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조례안' 보류하다

열린사회은평시민회 2020. 12. 4. 14:39

아래 글은 은평시민회 운영위원이자 은평구 협치조정관으로 있는 조재학님이 은평시민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참고하시도록 '민주시민교육조례안'을 첨부파일로 올려드리니 여러분의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민주시민교육 조례안(의원발의).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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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7일 은평구의회 정례회 본회의에서 안건으로 상정된 「은평구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조례안」(더불어민주당 신윤경 의원 발의)의 처리가 보류되었다. 은평구의회 19명의 의원 중 10명의 여·야 의원들이 공동발의하여 행정복지위원회의 안건 심사에서 원안 의결로 통과된 조례안이 본회의에서 보류되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다.

이 일이 있기 직전 시각에 은평구청 앞에서 ‘참인권청년연대, 국민의눈’ 등이 주최한 민주시민교육 조례 반대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동성애와 공산주의 교육을 조장하는 민주시민교육조례를 결사반대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두 사건이 우연의 일치인지 서로 연결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다.

필자와 민주시민교육의 인연은 20년전인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의 보수정당이자 집권당인 기독교민주당의 정치재단 ‘콘라드아데나워재단’의 초청으로 보름간 독일 민주시민교육(Politische Bildung)의 현장을 체험했다. 주민의 성장이 사회발전의 근본적인 힘이라고 믿고 주민교육에 힘써왔던 중견 시민운동가인 나에게 ‘교육’에 대한 일대 전환을 이루게 한 경험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장면은 한국의 고등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독일 학생들의 사회과 수업 장면이었다. 당시 독일 사회의 첨예한 이슈였던 ‘이주 외국인 문제’에 대해 찬반 토론식 수업을 진행했는데, 학생들의 활발한 토론 태도도 인상적이었지만, 담당교사의 역할이 더욱 눈에 띄었다. 분명 교육자인 교사가 이슈에 대한 다양한 자료만 제공할 뿐 학생들의 토론 장면을 줄곧 지켜보기만 했다. 나는 당연히? 수업 말미에 교사가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담당교사가 마지막에 한 일은 학생들에게 토론 소감을 묻는 것이었다. 맙소사! 선생님이 답을 내리지 않는 수업이라니!

이 결정적 장면은 나에게 교육적 개안(開眼)을 가져다주었다. 교육자(교사)의 역할은 답을 알려주는 역할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끔 돕는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학습촉진자)였던 것이다. 이후 독일 중앙정부의 민주시민교육원, 여러 정당의 민주시민교육재단, 지방정부의 민주시민교육원, 시민단체, 교회 등의 교육 현장에서 같은 경험을 했다. 그것은 독일의 제 정당·사회단체간의 치열한 논쟁과 합의의 산물인 ‘보이텔스바흐 협약(1976년)’에 따른 것이다. 협약의 내용은 1. 강제성의 금지 (교화 및 주입식 교육 금지), 2. 논쟁성의 유지 (교육장에서도 실제와 같은 사회적 논쟁 상황을 드러낼 것), 3. 학습자의 행위 능력 강화 (학습자 자신의 정치적 상황과 이해관계를 고려한 실천능력 배양)이다.

이것은 소위 교육전문가로 20여년간 활동했던 필자의 교육 철학이자, 이번에 은평구의회에 상정된 「은평구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조례안」(이하 「조례안」)의 골자이다. 「조례안」은 제4조 기본원칙에서 “① 민주시민교육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활동으로 주민이 지녀야 할 권리와 책임의식을 함양하는데 기여하여야 한다. ② 민주시민교육은 주민의 민주적 의식과 역량을 학습하기 위한 공익적 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사적인 이해관계나 정치적 의견의 관철을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어서는 아니된다. ③ 민주시민교육은 학문 분야와 정치현실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이론과 관점 및 다채로운 의견들이 공정하게 다루어지는 등 합리적인 의사소통방식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등을 명시하고 있다.

은평구가 지향하는 민주시민교육은 「조례안」 기본원칙에 철저히 입각해서 은평구 주민들로 하여금 사회적 상황의 변화를 스스로 간파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자율적으로 영위하도록 돕는 교육이다. 은평구의 민주시민교육은 특정 이념이나 정치적 견해를 전달하는 교육이 아니며, 사회적으로 논쟁이 되는 사안은 관련 정보를 학습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하여 주민 스스로 판단하도록 돕는 교육이다. 은평구 민주시민교육의 유일한 가치는 헌법에 명시된 민주주의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사회는 극심한 진영논리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고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이 소모적인 상황을 극복하는 중요한 방법은 진영논리에 치우치지 않고 스스로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고 권리와 책임을 다하는 민주시민의식이 곳곳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은평구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조례안」은 은평에서 그것을 뿌리내리게 할 제도적 장치가 될 것이다.

이미 답을 알고 있고 그 답을 주민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민주시민교육이 아니다. 민주시민교육은 시민단체에서 진행하는 교육과 같은 말이 아니며, 시민단체의 전유물도 아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도 오래전부터 민주시민교육을 핵심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전국의 각 지부별로 활발하게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믿지 못하겠으면 인터넷 기사 검색을 해 보시라.





출처 : 은평시민신문(http://www.epnews.net)